진화하는 스토커들의 행각 천태만상

최근 한 20대 여성이 자신의 원룸에서 잔인하게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괴롭혔던 스토커의 소행이었다.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이 범행의 이유. 짝사랑이 집착으로, 집착이 분노로 바뀐 스토커의 잔혹한 복수였다. 이처럼 강력범죄까지 부르는 스토킹. 문제는 각종 첨단기기들이나 인터넷이 스토커들이 활동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감춰진 사생활까지 파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남몰래 누군가를 쫓고 있는 스토커들의 행각을 살펴봤다.

 

짝사랑하던 여성의 집 침입해 살해한 스토커 덜미
미니홈피로 이사간 집 알아내고 범행 계획 드러나

지난 5일 전남 광주 김모(28·여)씨의 원룸에서 김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김씨가 연락도 없이 출근을 하지 않는 것이 걱정됐던 직장동료에 의해서였다. 숨진 김씨의 목에는 흉기에 찔린 흔적이 남아 있어 타살의혹이 짙게 드리워졌다.


경찰은 외부 침입 흔적이 없는 것으로 미뤄 면식범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용의자들을 압축해나갔다. 그 과정에서 직장동료 백모(29)씨가 유력한 용의자로 떠올랐다. 몇 달 동안 김씨를 상대로 스토커 행각을 벌인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에 경찰은 백씨를 검거했고 백씨는 결국 자신의 범행을 시인했다. 짝사랑했던 여성을 결국 자신의 손으로 살해하고 만 것이다.

이사가면 될 줄 알았는데…


미니홈피로 주소 알아내

경찰에 따르면 백씨가 김씨를 만난 것은 지난 2008년이었다. 모 스티로폼 회사에서 근무하던 백씨는 같은 직장에 다니는 김씨를 좋아하게 됐고 지난해 7월부터는 본격적으로 구애를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김씨는 번번이 백씨의 구애를 거절했다.


그러나 백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랑의 감정은 집착으로 바뀌었고 스토킹 행각을 시작했다. 백씨의 이상행동에 두려움을 느낀 김씨는 휴대폰 번호를 바꾸고 이사를 해 가까스로 백씨를 따돌렸다.

드디어 백씨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 김씨. 하지만 이것은 착각이었다. 백씨가 이사한 집의 위치를 알아낸 것이다. 인터넷 미니홈피에 이사한 동네의 사진을 올린 것이 화근이었다. 이 사진을 본 백씨는 추적 끝에 김씨가 사는 집을 알아냈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것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서였다.

 

백씨는 김씨의 집에 침입을 할 계획을 짰다. 흉기와 청 테이프 등을 준비하고 원룸 주변에 CCTV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상세히 알아봤다. 범행을 위한 치밀한 준비를 한 것이다. 그리고 지난 5일 백씨는 김씨의 집 앞으로 갔다. 꽃 배달 직원으로 위장하기 위해 장미꽃 한 다발도 준비했다.


그렇게 한 동안 집 앞을 서성이던 백씨는 집밖으로 나오는 김씨를 발견했고 강제로 김씨를 집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곳에서 백씨는 김씨에게 “왜 만나주지 않느냐”고 따졌고 이 과정에서 김씨의 손발을 강제로 청 테이프로 묶었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던 백씨는 준비해간 흉기로 김씨의 목을 찔러 살해했다.

 

그 뒤 백씨는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손발을 묶었던 테이프를 풀고 증거를 없애기 시작했다. 김씨가 입고 있던 옷을 세탁하고 방바닥과 가구, 벽 등에 묻은 피를 세제로 닦아내 완전범죄를 노렸던 것이다. 그 후 백씨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출근해 근무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짝사랑하는 사람을 상대로 하는 스토킹은 살인을 불러오는 강력 범죄로 변모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스토커들이 정보기기를 이용해 더욱 치밀하게 범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사생활이 고스란히 담긴 미니홈피 등이 스토킹에 악용되고 있다. 대학생 이모(22·여)씨는 최근 미니홈피를 삭제했다고 한다. 중학교 시절 만들어 수년간 정성스레 꾸민 미니홈피를 하루 아침에 없앤 이유는 스토커에게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무려 1년 동안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스토커가 미니홈피를 통해 이씨의 각종 정보를 캐내고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기 때문이다.

 

이씨는 “스토커에게는 공개가 되지 않아 안심하고 미니홈피를 꾸몄는데 알고 보니 스토커가 내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아 내 수시로 드나들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씨의 미니홈피를 해킹해 바뀐 휴대폰이나 집 주소, 친구관계, 자주 가는 카페나 식당 등을 알아낸 것이다.

 

이씨는 이 사실을 안 직후 경찰에 신고를 하려 했지만 가족의 만류로 그마저도 포기했다고 한다. 신고해봤자 처벌받기도 어렵고 신고한 것에 대해 보복을 당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씨는 “뒤늦게나마 미니홈피를 삭제하긴 했지만 여전히 불안하기만 하다”며 “이메일이나 자주 가는 사이트, 홈쇼핑 등도 모두 탈퇴를 해야 되는 건지, 이사라도 가야 되는 건지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기분이다”라고 한숨을 쉬었다.

e-메일과 인터넷 쪽지, 휴대전화, 메신저 등으로 음란한 글이나 사진을 반복적으로 보내거나 인터넷에 사적인 정보를 공개하겠다며 협박을 하는 사이버 스토킹 역시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경찰청이 지난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정갑윤(한나라당)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경찰에 적발된 사이버 스토킹은 2005년 333건에서 2008년 1018건으로 급증했다.

 

회사원 정모(27·여)씨도 몇 달 전부터 자신의 인터넷 메신저에 말을 거는 스토커 때문에 메신저를 열기가 두렵다고 한다. 이 사이버 스토커의 행각은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어느 날 자신과 연결도 되어 있지 않은 한 남성이 메신저로 대화를 걸기 시작한 것. 그 남성은 정씨의 나이, 직장, 출신학교, 사는 동네까지 알고 있다며 만남을 요구했다.

 

처음엔 친구가 아이디를 바꿔 장난을 치고 있는 거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정씨. 하지만 이 남성은 그 후에도 일주일에 몇 번씩 나타나 만나자고 말을 걸었고 그제야 정씨는 사이버 스토킹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메신저로 스토킹?
개인정보 유출 ‘술술’

정씨는 “메신저가 업무 상 꼭 필요해 근무 중에는 꺼둘 수도 없어 메신저 창이 열릴 때 마다 스토커가 아닌가 불안하기만 하다”며 “경찰에 신고를 하려 해도 증거가 없으니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고 토로했다.

첨단장비를 이용한 스토커까지 등장하고 있다. 스토킹을 하는 사람의 차 등에 위치추적 장치를 달아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무서운 스토커들이다. 지난해에는 헤어진 여자친구의 차량에 몰래 위치추적 장치를 단 회사원이 덜미를 잡혔다. 2년 전 헤어진 여자친구를 잊지 못했던 이 회사원은 지난해 5월 전 여자친구의 차량 범퍼에 위치추적 장치를 부착했다. 그리고 실제로 여자친구의 차량이 지나간 곳을 따라 움직이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인터넷, 첨단기기 등 이용해 사생활 캐내는 스토커 증가
이메일, 메신저 등을 통해 스토킹하는 ‘사이버 스토킹’ 급증

이처럼 스토킹을 도와주는 각종 정보기기들이 등장하면서 스토커의 수도 늘고 있다. 사회정신건강연구소가 여성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30%가 스토킹을 당했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스토킹 피해자는 연간 18만명 이상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서울대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한 스토킹 설문조사에서 학생 6명 중 1명은 스토킹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서울대 성희롱·성폭력상담소가 지난해 16개 단과대 학생 945명을 대상으로 스토킹 피해 여부를 조사한 결과 15.4%가 ‘피해를 당한 적이 있다’고 답한 것.

 

조사 결과에 따르면 남학생의 9.7%, 여학생의 22.6%가 스토킹을 당했고 여학생 피해자 중 절반 정도는 2회 이상 피해를 당했다고 답했다. 가해자는 ‘학교 동기, 선·후배’(37.1%), ‘사귀던 친구나 연인’(28%), ‘안면만 있는 사람’(15.7%), ‘전혀 모르는 사람’(9.9%) 등의 순이었다.

 

스토킹 방법(복수응답)은 전화·문자(70%)가 가장 많았고 다음은 집·회사 방문(40.9%), 홈페이지·미니홈피 글 게시(39%), 따라다니기(35.1%) 등이었다. 특히 협박·위협(23.4%), 신체적 접촉(25.3%), 구타·폭행(16.9%), 성행위 시도(15.6%) 등 위험성이 심각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피해 학생 중 경찰에 신고(5.4%)하거나 전문상담기관을 방문(2%)한 경우는 극히 적었다.

 

이처럼 스토킹을 하는 방식이 날로 진화할수록 피해자들의 고통도 더욱 심해지고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의하면 많은 피해자들이 심한 공포와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고 한다. 수면장애를 겪거나 심한 경우 자살충동까지 느낄 정도의 고통을 겪는 피해자도 적지 않다.

 

인간관계에도 지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스토킹 피해를 받는 이들 가운데는 휴대폰 번호를 수시로 바꾸거나 직장을 그만두고 주변과 연락을 끊는 경우가 많다. 한때 전 남자친구에게 스토킹을 당했다는 박모(29·여)씨도 스토킹으로 인해 지인들과 사이가 멀어졌다고 한다. 혹시 전 남자친구가 지인들을 통해 바뀐 연락처를 알아낼까봐 휴대폰 번호를 바꾸고도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회생활까지 지장
남몰래 우는 피해자들

또 피해자들 중에는 가해자를 만났던 자신을 자책하거나 가해자에게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자포자기하는 삶을 사는 이들도 있다. 자신의 생활을 버리면서까지 스토커에게 벗어나려 노력했지만 실패했을 때 자포자기를 하게 된다는 것. 

 

이처럼 스토킹은 피해자의 인생 전반에 악영향을 끼치는 명백한 범죄지만 뚜렷한 규제방법도, 관련법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스토킹 방지법의 경우 지난 1999년과 2003년 두 차례 발의된 적이 있지만 스토킹을 어디까지 범죄행위로 규정할지를 놓고 논란만 거듭하다가 번번이 폐기된 바 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스토킹 법안 역시 폐기될 위험에 처해있다.

 

전문가들은 “스토커에게 싫다는 의사표시를 분명하게 한 뒤 두 번 다시 만나지 말아야 하고 말로 타일러 볼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며 “경찰에게 신고하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더라도 스토커에게 단호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인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