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 대목 바가지 씌우는 ‘악덕모텔’<밀착취재>

 

최악의 불황과 함께 돌아온 지난 크리스마스. 캐럴도, 화려한 트리도 찾기 힘든 썰렁한 성탄절이었지만 연인들의 쉼터 모텔만큼은 어김없는 특수를 누렸다. 많은 모텔들은 평소 주말 방값의 2~3배를 받으며 한 해 최고의 대목에 어울리는 쏠쏠한 돈맛을 봤다. 이처럼 ‘연인들의 날’만 되면 폭리를 취하는 숙박업계에 따가운 시선이 쏠리고 있다. 별 볼일 없는 시설을 갖추고도 손님이 많다는 이유로 호텔급 가격을 받아 챙기는 얌체 업소까지 판을 쳐 짜증이 날 대로 난 것. 특별한 날만 되면 기승을 부리는 악덕 모텔들의 상술을 들여다봤다.
 

직장인 정모(28)씨는 지난 크리스마스만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붉어진다. 모텔의 바가지요금 때문에 여자 친구와의 오붓한 시간을 망친 탓이다. 


여자 친구와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이브를 로맨틱하게 보낼 방법을 고민하던 정씨는 호텔을 예약해 조촐한 파티를 열 계획을 짰다. 그러나 서울시내의 호텔은 몇몇 값비싼 방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예약이 끝난 상태였다. 그렇다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기엔 아쉬웠던 정씨와 여자 친구는 결국 평소 자주 가던 단골모텔로 향했다.

 

평일보다는 비싸겠지만 설마 단골에게 바가지를 씌우겠느냐며 들어간 모텔. 그러나 주인아저씨는 방값으로 12만원을 요구했다. 평소 주말 방값이 5만원이란 것을 생각하면 턱없이 비싼 요금이었다.


단골이라는 점을 내세워 협상하려 해도 주인은 막무가내였다.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에 주위에 있는 모텔 몇 군데의 요금을 알아봤지만 담합이라도 한 듯 비슷비슷한 가격을 불렀다.


그 정도 방에 12만원이란 거금을 들이기엔 아까웠던 정씨 커플은 함께 밤을 보내는 것을 포기했다. 대신 준비한 케이크에 불이라도 붙이려고 대실을 했다. 대실비도 평소의 두 배에 가까운 3만5000원. 결국 이들은 밤 10시30분부터 12시까지 3만5000원을 지불하고 짧은 파티를 했다. 시간이 부족해 거사(?)도 치르지 못한 채 쫓기듯 모텔을 빠져나왔다고.


정씨는 “여자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데 12만원이란 돈이 아깝지는 않았다. 단지 평소와 다름없는 시설과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7만원의 웃돈을 얹어주는 것이 부당했을 뿐”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처럼 지난해 크리스마스이브에도 많은 모텔들이 바가지 요금을 받아 챙겼다. 일년 중 최고의 대목인 성탄절 전야에 한몫 건지겠다는 욕심을 부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언제부턴가 크리스마스가 연인들의 날로 둔갑하고 이브를 함께 보내려는 커플들이 넘치면서 모텔요금은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여기에 술의 힘을 빌려 마음에 드는 이성과 만리장성을 쌓겠다는 흑심(?)을 품은 이들까지 가세하면서 숙박비가 천정부지로 솟구치고 말았다.


서울 신촌, 강남, 종로 등 젊은이들이 몰리는 번화가에 있는 모텔은 적게는 2배에서 많게는 3~4배까지 방값을 올려 받는 것이 실상이다.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 그러나 이마저도 없어서 남녀들이 줄을 서 기다릴 정도다.


일부 인기 모텔들은 12월24일과 25일 예약률이 90%를 넘어설 만큼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동네에 있는 모텔 촌도 예외는 아니다. 대부분의 모텔들이 10만원 전후로 숙박요금을 정해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다보니 호텔요금보다 비싼 요금을 받는 모텔들도 적지 않았다. 한 호텔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24일의 경우 다른 날보다 숙박비가 조금 더 비쌌지만 12만원 정도면 객실을 이용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물론 가장 저렴한 방의 경우였지만 25만원까지 숙박비를 올려 받은 일부 모텔들의 횡포가 극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크리스마스이브, 일부 모텔들 바가지상혼 도 넘어
설 연휴, 밸런타인데이 등 대목 앞두고 한몫 챙길 태세

이처럼 해가 갈수록 성탄절 모텔비가 오르자 연인들은 호텔이나 펜션 등 상대적으로 바가지를 덜 씌우는 숙박업소를 물색하고 있다. 아예 12월24일날 함께 밤을 보내는 것을 포기하는 연인들도 늘고 있다. 식사와 선물교환 등 짧은 데이트를 즐기고 아쉬움을 안은 채 헤어지는 것이 더욱 애틋하다는 연인들도 많다.


매년 여자 친구와 함께 이브를 보내다 지난해엔 데이트 후 집으로 갔다는 한 남성은 “말도 안 되는 방값 때문에 여자 친구 앞에서 작아지는 모습을 보이기 싫고, 좋은 날 얼굴 붉히기도 싫어 고민했는데 여자 친구가 먼저 이번 성탄절엔 각자 집으로 가자고 말해줘서 고마웠다”며 “여자 친구의 마음씀씀이에 떨어져 있어도 더욱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보냈다”고 말했다.


이같이 매년 연인들을 울리고 애태우는 크리스마스이브의 바가지 상혼. 모텔의 악덕상술은 비단 크리스마스에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한해의 마지막 날인 12월31일이나 새해 첫날인 1월1일,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등 연인들에게 특별한 날이 오면 모텔요금도 거침없이 올라간다.


설 연휴나 추석연휴 등 명절도 마찬가지다.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명절엔 모텔들이 텅 빌 거라는 것은 착각이다. 명절 역시 대목 중 하나. 특히 연휴 마지막 날은 명절 내내 만나지 못했던 불륜커플들로 인해 모텔이 더욱 붐비기도 한다.


지난해 추석연휴 마지막 날 여자 친구와 모텔에 갔다는 이모(30)씨는 그날의 황당한 기억을 잊지 못한단다. 당연히 방이 많을 거라 생각하고 자주 가던 동네 모텔에 갔다는 이씨. 그러나 주인아주머니는 남은 방은 딱 하나뿐이라고 했다. 게다가 그 방은 프런트 바로 옆에 붙어있는 평소 주인이 쓰던 방이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요금을 깎아준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주말 특실 값을 요구했다고 한다. 인근 모텔들의 사정도 비슷할 거란 생각에 이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방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 방은 평소에 보던 모텔방이 아니었다. 화분, 주방도구, 옷가지 등 누군가가 거주하는 방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던 것. 이씨는 “평소보다 비싼 돈을 주면서 찜찜한 기분으로 하룻밤을 보낸 것을 떠올리면 아직도 화가 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특별한 날마다 되풀이되는 모텔들의 횡포를 제재할 법적근거는 없을까. 현행법으로는 ‘없다’가 정답이다. 모텔은 서비스업으로 분류되어 있고 정해진 금액이 책정되지 않아 업주가 임의로 요금을 정할 수 있다. 결국 이용자들은 하소연할 곳도 없이 주인이 부르는 값을 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모텔업자들도 이에 대해선 할 말이 있다는 입장이다. 불황으로 손님이 뚝 끊긴 마당에 일 년에 며칠 되지 않는 대목마저 놓칠 수는 없다는 것. 서울의 한 모텔주인은 “식당처럼 회전율이 높은 것도 아니고 숙박 손님은 한방에 한 커플밖에 받지 못하는데 요금이라도 올려 받아야 되는 것 아니냐”며 볼멘소리를 냈다.


그러나 손꼽아 기다렸던 성탄절날 방값 때문에 연인 앞에서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거나 본전생각에 개운치 않은 기념일을 보낸 이들에게 업주들의 푸념은 투정일 뿐이다.